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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84 호
예수 성탄 대축일 2004년 12월 25일 (다해)
 
 
성탄메시지 :     교구장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
성탄이야기 : 마구간     안셀름 그륀 '50가지 성탄축제 이야기' 중에서
 
 
성탄메시지
성탄절에 우리는 예수 아기의 탄생을 기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어 사람은 하느님을 온전히 닮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닮은 사람은 하느님의 마음을 갖고 하느님처럼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살 것입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아니하고, 남이 자기와 같진 않다고 싫어하지 아니하며 모든 사람을 자기같이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산다면 이 세상은 참으로 평화로울 것이며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이 성탄절에 우리 모두가 갓난아기처럼 고운 마음으로 남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또한 남을 자기같이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함께 이 세상에 평화가 있기를 바라야 할 것입니다. 
2004년 성탄에

교구장 이문희 바울로 대주교

성탄이야기
마구간
그리스도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 융은 이를 중요한 상징으로 보았다. 그는 우리가 하느님이 태어나신 마구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해야 할 것이라 한다. 우리에게는 마구간과 관련된 저마다의 체험과 정서가 있다. 어떤 부인은 어렸을 때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늘 마구간으로 갔다고 한다. 마구간에는 가축들이 그냥 그렇게 산다. 그곳에는 생명이 있고, 탄생과 죽음이 있고, 걱정근심도 있다. 마구간의 일상에도 나름대로의 기복이 있다. 아이들은 가축과 친하다. 가축들을 쓰다듬을 수 있다. 어떻게 해도 가만히 있다. 사람보다 참을성이 많다. 아이들이 자기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귀기울여 듣는다. 그리고 마구간에는 한결같은 온기가 있다. 
  마구간을 반들반들 청소하는 예는 없다. 거기에는 두엄과 오물, 짚과 건초가 범벅이 되어 있다. 몇 번씩이나 청소를 해도, 금세 거름이 쌓인다. 거름은 비료로 쓰인다. 이는 우리 내면을 상징한다. 우리 마음 역시 순수하지도 깨끗하지도 무균질도 아니다. 거기는 오물 투성이다. 우리가 억압한 모든 것이 피하에 숨겨진 채 그대로 계속 썩어간다. 예의와 친절의 밑바닥에는 얼음 같은 냉기가 숨어있고, 웃음띤 얼굴로는 공격의 화살을 쏘아댄다. 어떤이는 욕구를 억압한다. 그러나 그것이 가만히 있을 리 없다. 그 사람 안에 산재해 있다가, 배우자나 자녀들이 그 욕구를 맘껏 펼칠 때면, 새삼스레 회오리를 일으킨다. 바로거기, 우리 안의 ‘거름덩이’에서 하느님은 태어나시려 한다. 우리는 하느님께 깨끗한 방을 내어드릴 수 없다. 우리 마음의 더러운 마구간을 내어드릴 뿐이다. 그래서 괴롭다. 하지만 하느님의 탄생을 마치 우리가 얻어낸 것처럼 여기는 망상에서는 해방된다. 하느님은 다만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 안에 태어나길 원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그분께 무언가를 내보일 수 있어서가 아니다.
  예수의 탄생으로 마구간에는 빛이 가득하다. 만물을 사정없이 드러내는 빛이 아니라, 그냥 있는 대로 있게 하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빛이다. 하늘 아기 곁에서는 그대 안의 모든 것이 허용된다. 더럽고 버려지고 짓밟히고 비루한 것도 거기서는 초라하지 않다. 그리스도의 온화한 빛 속에서 그대가 외면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얻고, 그분의 사랑에 의해 변화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대 마음의 어둠과 혼돈 속으로 들어오심으로써 그대안의 모든 것이 변화된다는 것, 바로 그것이 마구간이 주는 위로다. 화학적으로 무결하게 청소되지 않은 상태야말로 하늘 아기에게 안전과 고향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분의 누워 쉴 곳을 부드럽고 살 만하게 한다. 아기 곁에서는 지나친 완벽이 오히려 낯설다. 아기가 바라는 것은 포근한 잠자리지 절대 무균의 침대보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 생긴 모습 그대로가 바로 그리스도의 집일 수 있다는 것을, 그분이 그대와 세상을 위해 태어나실 마구간임을 믿어라.

안셀름 그륀 '50가지 성탄축제 이야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