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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71 호
연중제26주일 2004년 09월 26일 (다해)
 
 
이 주일의 말씀 : 내가 가진 라자로의 몫     박석재 가롤로 신부 | 대구가톨릭대학교
예수는 어떤 가정을 바라는가? (30) : 자녀의 윤리, 중교 교육     이창영 바오로 신부·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국장
제3장 복음나누기 ‘7단계’ 단계별 실습 : 4단계 : 듣는다 - 침묵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이 주일의 말씀
내가 가진 라자로의 몫
하느님이 모든 인간을 똑같이 사랑하신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하느님은 편애하시는 분이다. 하느님의 마음은 늘 가난한 이 곁에 가 있다. 하느님은 약자 편이시다. 모든 인간이 생명의 축복을 풍요로이 누리기를 바라시나 가난의 비참함에서 인간의 품위마저 지키지 못하는 이들을 한없는 연민으로 바라보신다. 함께 나누어 다같이 넉넉하도록 맡겨주신 부를 독차지하려는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에 분노하신다.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에서 부자는 무슨 큰 나쁜 짓을 하지 않았는데도 죽어서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고 라자로는 가난했다는 것 외에 특별히 잘한 일도 없는데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다. 부자 되는 것이 축복이 아니고 저주인가? 부자의 죄는 무엇이었는가? 자신이 가진 부로 인생을 향유하면서도 바로 곁에 있는, 자기와 같은 한 인간의 불행과 비참함에는 무감각했다는 것이다. 내 것은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느님의 마음은 헤아릴 줄 모르고, 아마도 애써 외면했던 것이 부자의 죄였다. 이웃의 아픔에 무디고, 자신의 탐욕에만 사로잡힌 것이야말로 무서운 죄이다. 이웃의 고통과 단절된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과도 단절되어 있다. 부자는 자신의 소유를, 기본적인 필요마저 얻지 못하는 이들과 나누는 의무를 다함으로써 구원받아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는 단연 경제이다. 경제가 최우선의 가치가 되어 버렸다. 경제가 어려우니 경제의 위세는 더욱 등등해진 듯 하다. 경제와 무관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의 의식주와 자녀교육, 삶의 여유가 경제에 달려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세상의 경제논리에 무작정 따라 살 수만은 없는 일이다. 국경도 없는 무한경쟁시대,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다해야 하는 냉엄한 시장경제 체제에 온정과 약자에 대한 배려가 어디 있는가? 오직 냉정한  이윤추구와 계산이 있을 뿐이다. 그로 인해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잘 사는 나라와 못 사는 나라의 격차는 커져만 간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의롭지 못한 세상이다.  
경제에 하느님의 정신, 하느님의 마음을 불어넣어야 한다. 경제가 세상을 지배하는 절대원리가 되어서는 안된다. 하느님의 뜻에 맞는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경제에 고삐가 필요하다. 머리뿐인 경제에 이웃의 아픔을 느끼는 감각과 감정을 이식시켜야 한다. 이는 하느님의 마음과 공명하는 우리의 마음이 경제 안에서 살아 움직이게 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9월은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순교정신을 되새기는 달이다. 신앙과 목숨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가혹한 시대를 순교자들은 살았다. 다행히 우리는 목숨 걸고 신앙생활하지는 않아도 된다. 그러나 신앙은 본질적으로 선택이다. 우리도 선택해야 한다. 아무도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순교자를 기리는 일이 기도문 바치고 성지순례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좀더 가지고 좀더 누리고자 하는 내 욕심 보다 어려운 처지의 이웃을 돌보는 선택을 한 번 더 실천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진정 의미있는 순교정신의 실천이 아니겠는가. 우리 주변에 라자로가 살고 있음을 잊지 말자. 내가 가진 것 안에 하느님이 맡기신 라자로의 몫이 있음을 잊지 말자. 

박석재 가롤로 신부 | 대구가톨릭대학교

예수는 어떤 가정을 바라는가? (30)
자녀의 윤리, 중교 교육
가정은 가장 본질적인 삶의 바탕이요, 종교적 생명선의 탄생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의 종교 교육은 서로 함께 주고받는 삶의 경험과 체험 세계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 부모들이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자녀들과 시간에 쫓기지 않고 식탁에 단란하게 둘러앉거나, 교외로 산보하면서 육체적 굶주림과 정신적 호기심을 자연스레 충족시켜 주고 이를 종교적 범주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면 더욱 성공적인 종교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가정 기도가 비로소 체험적인 삶의 형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정 안에서 신앙 형성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몇 가지 들어보겠다. 첫째로 심리적으로 건전하고 균형있는 가정환경이어야 한다. 유아는 안전감, 도움, 인정을 받으려는 자연적 욕구가 강렬하며 이 욕구는 부모로부터 성취된다. 가정 안에서 행복감이나 감사의 정을 체험하지 않고는 종교적 갈망이 있을 수 없다. 둘째로 부모의 모범적, 균형적 신앙생활이 중요하다. 신앙 교육이란 교리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생활의 증거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모는 이웃을 사랑하고 정의롭고 책임감이 강한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셋째로 가정의 종교 예식의 체험은 자녀에게 종교심을 더욱 견고케 하고 종교적 소속감을 확고하게 하며, 유아기에 이러한 특징적인 인상은 성장한 후에도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아 있게 된다. 넷째로 가정과 본당과의 긴밀한 유대 관계가 필요하다. 다섯째로 교리교육에 대한 부모의 적극적 관심이 필요하다. 
  아무리 이러한 이론적인 견해와 그 중요성을 간과한다 할 지라도 실천이 없는 교육은 그 의미를 상실한다. 곧 가정에서의 자녀 교육은 무엇보다도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테크닉을 요구하며, 인간 성장에 대한 논리적이고도 고도의 지식과 관심을 요구한다. 무엇보다도 자녀 교육에 대한 관심과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부모들의 교육이 선행되어야 하며, 이는 본당 재교육 차원에서 실행되어야 한다. 

이창영 바오로 신부·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무국장

제3장 복음나누기 ‘7단계’ 단계별 실습
4단계 : 듣는다 - 침묵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4단계 : 듣는다 - 침묵하며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
·“…분 동안 침묵하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고자하는 말씀을 듣도록 합시다.”

   (4) 성서에서의 침묵
·마태 4,1-4 (예수께서 40일간 광야에서 홀로 지내시다) ·루가 6,12-13 (예수께서 홀로 밤을 세워 기도하시다) ·시편 131,2 (하느님 품 안에서 ‘평온’해진다)
   (5) 문제점
·침묵을 싫어한다. ·진행자가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다. ·고정관념을 가지고 말을 만드는 수도 있다. 
   (6) 해결방안
·진행자는 시간을 정확히 준수한다. ·침묵의 시간은 우리가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선택한 단어를 반복함으로써 주님의 사랑을 볼 수 있도록 노력한다. ·지능을 쓰지 않는다. 이 말이 나에게 무슨 뜻인지 알려고 할 것 없이 그냥 앉아서 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현존에 머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