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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 2003년 주보
 
제 1323 호
연중제31주일, 위령의 날 2003년 11월 02일 (나해)
 
 
이 주일의 말씀 :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이영재(대건 안드레아) 신부 / 진해 해군성당
한 시인의 단상 : 정갈한 밥상     권국명(알로이시오) / 대구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의 소공동체 운동 현황 : 2. 사목에 반영된 소공동체운동     이문희(바울로) 대주교 / 교구장
묵상해봅시다 :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마태 5,12)     편집부
알아봅시다 : 혼인공시(婚姻公示)가 무엇인가요?     '함께 하는 여정' 중에서
 
 
이 주일의 말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11월은 위령성월입니다. 이 달을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기도하는 달로 정한 것은 교회의 오래된 전통이며, 우리도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연령들을 위해 기도하지만 그분들 또한 목숨을 걸고 주님을 사랑한 죄로 그 빛 안에 오늘 우리가 살고 있음을 감사드립니다. 
“주님만이 그 믿음을 아시는 죽은 이들”과 “주님 뜻대로 살다가 떠난 이들”과 “주님의 자비에 맡겨진 죽은 모든 이들”을 위해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이는 죽더라도 살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모든 이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게 될 것을 믿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욥은 “나의 살갗이 뭉그러져 이 살이 질크러진 후에라도 나는 하느님을 뵙고야 말리라. 나는 기어이 이 두 눈으로 뵙고야 말리라”고 모든 인간적 희망이 깨져 버렸는데도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죽음을 넘어선 희망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과 무관하지 않게 오늘 복음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분명한 어조로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정말 그럴까요? 세상이 온통 돈 없어 못살겠다 아우성인데 정말 가난이 행복으로 바뀔 수 있을까요? 너무 오랫동안 우리는 부(富)와 가난(貧)을 돈과 물질의 유무(有無)로만 해석해왔습니다. 돈 많고 재산 넉넉하면 자동적으로 부자가 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은 많은 재산을 지녔으니 정말 부자일거야…’ 이렇게 믿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쓰러지고 있는 현실입니까?
가난은 자유입니다. 참으로 가난한 사람은 돈과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 뜻 안에서 움직이고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주신 것에 감사하며 또 주실 것이라 믿고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이 진짜 부자입니다. 하느님의 힘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이 위령성월에 어떻게 살아가도록 기도해야 할까요? 자신의 죽음을 한치도 예측할 수 없는 우리는 어느날 자기도 모르게 지상에서의 마지막 행동을 하게 됩니다. 강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얼마나 무력하고 유한한 존재인가요?
“아무것도 가져온 것이 없고 아무것도 가져갈 것이 없는 순례자인 우리가 이기심과 탐욕의 노예가 되지 말고 갖고 있는 모든 것이 당신께 빌려받은 것임을 항상 기억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영재(대건 안드레아) 신부 / 진해 해군성당

한 시인의 단상
정갈한 밥상


음식은 먹고 마시는 물건이다. 사람도 먹고 마시는 일로 생명을 유지한다는 뜻에서는 다른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나 사람의 음식과 동물의 먹이가 다른 점은 사람은 먹고 마시는 일을 정신화 한다는 점에 있다. 먹이를 정신화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함부로 먹지 않고 가려서 먹고, 알맞게 먹고, 때맞춰 먹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먹는 예절이 거기에 뒤따른다. 더욱이 음식을 여럿이 나누면 거기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정신적인 의미를 띠게 된다. 밥상공동체라고 할까. 서로를 순수하게 나누는 자리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음식을 나누는 일을 자주 하셨다. 그럴 때마다 그분의 깊은 뜻이 거기에 있었다. 나를 온전히 내어 놓는 신비가 담겨 있었다. 
  그런데 우리 시대는 음식이 먹이로 전락해 가고 있다. 건강에 좋다면 무엇이든지 마구 먹어치운다. 너무 많이 먹어 오히려 여러가지 현대병에 시달린다. 거리에 즐비한 것이 음식점이고, 그것도 분에 넘치는 호사스러운 음식판이 벌어진다. 그런 곳에서 먹어야 먹은 것 같고, 대접받은 것 같다. 이것이 오늘날 세속의 음식문화 세태다. 
  크리스찬은 세속의 세태를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이다.내가 먹는 만큼 지상의 어디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있다. 그와 나누기 위해서 내 밥상이 가난하고 정갈해야 함을 생각해야 한다. 가난한 소찬의 아름다움, 그것이 크리스찬의 밥상이다.

권국명(알로이시오) / 대구가톨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한국의 소공동체 운동 현황
2. 사목에 반영된 소공동체운동

현대의 복음선교(Evangolii Nuntiandi 1975) 58, 교회의 선교사명(Redemptoris Missio 1990) 51, FABC Bandung 선언(1990) 등, 교회는 공동체라는 원칙은 여러 곳에서 강조되었고 지난번 아시아 주교대의원대회에서도 “주교대의원의 교부들은 그들의 사목경험을 바탕으로, 본당과 교구 안의 친교를 증진시키는 방법으로써, 그리고 복음화를 위한 진정한 힘으로써 기초 교회 공동체들의 가치를 강조하였습니다. 이 작은 집단들은 초대 그리스도인들처럼(사도 2,44-47: 32-35 참조) 믿고 기도하고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들로 살아가도록 신자들을 도와줍니다. 그들은 형제적 사랑과 봉사의 정신으로 복음에 따라 살도록 그 구성원들을 도와주는 데 목적을 두며, 결과적으로 사랑의 문화의 새로운 표현인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확고한 출발점인 것입니다.”(이시아 교회 25)
  남아프리카의 Lumko Institut에 이어 Asips(Asian Integral Pas-toral Approach)의 활동에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소공동체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고, 서울대교구는 이미 10여 년 전부터 이 운동을 시작하였고 지금은 대다수의 교구가 이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문희(바울로) 대주교 / 교구장

묵상해봅시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마태 5,12)
우리 할머니께서는 8월 15일 성모승천대축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일가 친지들이 모여 제사도 지내고 삼촌 신부님께서 오시면 가정미사도 드리곤 합니다. 이후 모두 음식을 나누며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어릴 적에 고모들과 삼촌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있었던 재미난 일들을 이야기하며 웃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아쉬움때문인지 유난히 정이 많은 한 고모는 눈물을 짓기도 합니다.

  11월은 ‘위령성월’이며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이나 친지들을 기억하게 됩니다. 제사 때 모인 가족 친지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돌아가신 할머니를 기억한다면 할머니께서는 우리 마음 안에 살아계신 것입니다. 
  미사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돌아가심을 기억하고 바치는 미사 때에 우리는 예수님께서도 우리 안에 살아계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예수님께서도 돌아가신 할머니께서도 하느님 안에 영원히 살아계시는 것입니다.


편집부

알아봅시다
혼인공시(婚姻公示)가 무엇인가요?


  혼인성사를 받으려면 먼저 본당 신부님을 찾아가 혼인서류를 작성해야 합니다. 
  본당신부님은 부부가 될 두 사람을 본당 신자들에게 공개하여 이들이 결혼할 수 없는 혼인장애가 있는지 여부를 2주간 공시하여 묻게 됩니다. 
  이러한 공적인 절차를 혼인공시라고 합니다.

'함께 하는 여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