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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21 호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전교주일) 2003년 10월 19일 (나해)
 
 
이 주일의 말씀 : 꾸준히 전합시다     최광경(비오) 신부 / 대신성당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전교주일 담화문 (요약) : 전교주일 담화문     바티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묵상해봅시다 :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내 제자로 삼아라”(마태 28,19 참조)     편집부
알아봅시다 : 왜 혼인성사를 하나요?     '함께 하는 여정' 중에서
 
 
이 주일의 말씀
꾸준히 전합시다

복음을 전하지 못하면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믿을 수가 없습니다. 결국 믿음은 들음에서 출발합니다. 믿음은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주님이 주시는 것이지만, 그것을 전하고 들려 주는 것은 우리 몫입니다. 사도 바오로께서 그의 신자들에게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며”(필립 2,12) 그들의 구원을 위해 힘쓸 것을 권고 하셨습니다. 또한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1고린 9,16)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전교에 대한 책임을 깊이 느끼셨습니다.
전교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복음을 잘 받아들이도록 미리 듣는 사람의 마음을 준비시키는 일이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도 당신 전능으로써 한 순간에 역사하시지 않으시고, 오랜 세월동안, 구약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민으로 삼아, 당신 독생성자를 보내시기 위해 준비기간을 가지셨으며, 때가 이르러 강생하신 후에도 미리 세례자 요한을 보내시어 주님의 길을 닦게 하셨습니다. 전교를 함에 있어도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듯이 단계가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복음선포에 앞서서 인간과의 유대적 관계를 갖기 위해 그 사람과의 동질화를 꾀했다고 말합니다.(1고린 9,19-23) 어느 곳, 어느 때든지 그가 가는 곳, 만나는 사람들을 얻기 위해, 즉 하느님 안에서 하나되기 위해, 스스로 그들처럼 되어, 먼저  그들과의 인간관계를 맺었음을 보여줍니다. 사실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어떠한 좋은 것일지라도, 상호 신뢰심 없이는 그것이 상대방에게 전해지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오해를 자아내는 경우까지도 있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이 되어주는 마음, 이것이 전교를 하려는 사람의 기본 자세라 봅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이런 관계 형성은 잘 하는데 여기서 머물고 마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복음선포의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쁜 소식’을 직접 전달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심리상태, 연령, 교양의 정도, 성별 등을 고려하여, 거기에 알맞은 하느님의 말씀을 들려 주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성당에 같이 갑시다”라고 해서 반응이 없으면 “아! 저 사람은 관심이 없구나”라고 생각하고 두 번 다시 권하지 않는 소극적 자세를 취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전하고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계하고 격려하시오”(2디모 4,2)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은 내 힘이 아니라 바로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내 안의 보물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줍시다.


최광경(비오) 신부 / 대신성당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의 전교주일 담화문 (요약)
전교주일 담화문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교황직을 시작할 때부터, 저의 교황직을 성모님의 특별한 가호에 맡기고자 하였습니다. 더 나아가 저는, 제자들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하여 … 마음을 모아 기도에 힘썼던”(사도 1,14) 다락방의 경험을 상기하도록 온 신자 공동체에 자주 요청해 왔습니다. 
  지난 10월, 교황 재위 제25주년을 맞아, 대희년 영성의 지속으로서, 그리스도교 전통에 너무도 친숙한 묵주기도를 재발견하도록 하기 위한 특별한 해를 선포하였습니다. 이 특별한 성모님의 해가 끝나는 바로 그 시점에 거행되는 전교주일을 잘 준비한다면, 전교주일은 이러한 교회 공동체의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할 것입니다. 성모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날마다 묵주기도를 바치며 그리스도 생애의 신비를 묵상할 때 우리는 교회의 사명이 무엇보다도 기도에서 힘을 얻어야 한다는 것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될 것입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의 발달로 교회가 예수님을 선포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는 더욱 빛나는 성덕으로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얼굴을 비추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힘든 노력에서, 교회는 성모님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성모님에게서 교회는 배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히 헌신하는 ‘동정녀’가 되고 많은 자녀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태어나게 하는 ‘어머니’가 되는 법을 ‘배웁니다.’ 
  유능하고 거룩한 복음 선포자들을 양성하여야 합니다. 특히 만민 선교에 대한 사도들의 열정이 식지 않도록 하여야 합니다. 묵주기도는, 온전히 재발견되고 평가받는다면, 방대한 사도직 활동 분야에서 일할 하느님 백성을 양성시켜 줄 일상적이면서도 효과적인 교육적 영성적 도구가 됩니다. 
  선교 활성화의 임무는 세례 받은 모든 신자와 모든 교회 공동체의 진지하고 일관된 의무가 되어야 합니다. 교황청 전교 기구는 분명 구체적이고 특별한 역할이 있으며, 저는 헌신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는 교황청 전교 기구에 감사 드립니다.
  저는 여러분 모두에게, 교회와 인류가 특별히 필요로 하는 은총을 주님께 얻을 수 있도록 개인으로나 공동으로 열심히 묵주기도를 바칠 것을 권유하고 싶습니다. 이는 어린이, 어른, 젊은이, 노인, 가정, 본당, 수도 공동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에게 드리는 권유입니다.
  여러 가지 지향 가운데서도 저는 평화에 대한 지향을 잊지 않고자 합니다. 전쟁과 불의의 근원은 ‘갈라진’ 마음에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비를 이해하는 사람은 누구나 평화의 비결을 알게 되고 이를 자기 삶의 목표로 삼습니다. 이는 또한 묵주기도의 목표이기도 합니다”(「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 40항). 묵주기도가 우리 생활의 일부가 된다면, 사람들의 마음과 가정 안에, 그리고 민족들간에 평화를 건설하는 특별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성모님과 함께, 우리는 그 아드님이신 예수님에게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모님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땅 끝까지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일에 주저 없이 헌신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여러분을 모두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바티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묵상해봅시다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다 내 제자로 삼아라”(마태 28,19 참조)
살아가는데 있어 주거환경이 중요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습니다. 집을 살 때도 단지 평수나 오래된 정도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교통편은 어떤지, 주변 상가 시설은 어떤지 꼼꼼히 살피게 됩니다. 얼마 전 보도된 환경단체의 위도 원전수거물 관리시설(원전센터) 및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집회와 난지도 골프장 건설 반대 집회는 각종 단체와 주민들의 불편한 심기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그런데, 최근 대구교구에 신설본당을 짓기 위해 터를 마련하는데, 주변 주민들의 반대가 심하다고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 18-20)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당 짓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마치 성당이 핵폐기물처리장이나 골프장처럼 환경을 오염시키고 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무척 의아했습니다. 그리고 신자인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기에 성당짓는 것을 반대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지 예비자들에게 세례를 주는 것, 비신자들을 성당으로 이끄는 것 등, 교회 중심적인 전교만으로 이 세상을 하느님의 뜻대로 복음화한다는 것은 요즘 세상에 역부족임을 느낍니다. 그렇다면 우리 신자들은 비신자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추어져야 할지 생각해봅니다. 단지, 성당에 가자고 손을 잡아 이끌기보다는 성당은 하느님께서 나누어주신 사랑으로 사는 곳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전교를 해야 합니다. 전교주일인 오늘, 나 자신부터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복음화된 삶을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편집부

알아봅시다
왜 혼인성사를 하나요?

  혼인은 자녀의 출산과 양육, 그리고 부부 간의 사랑과 협조를 위해 남녀가 맺는 친밀한 일치입니다. 부부 서로 간의 사랑은 혼인성사의 표지입니다. “천지창조 때부터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여자와 남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됩니다.”(마르 10,6-9). 이런 성서말씀에 근거하여 혼인성사는 두 가지 특성을 가집니다.
  1) 단일성(單一性) : 혼인은 한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어야 합니다.
  2) 혼인불가해소성(婚姻不可解消性) : 혼인성사로 맺어진 부부는 서로 갈라설 수 없습니다.

'함께 하는 여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