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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 2003년 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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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14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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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말씀 : 나만 죄짓지 않으면 된다? ▷ 김영철(라우렌시오) 신부 / 서재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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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가정대회 준비를 위한 묵상(4) : 부부사랑 ▷ 김용민(안드레아) 신부 / 가정사목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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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봅시다 - 본당 발전의 5단계 : (5) 소공동체로 엮어진 공동체 ② ▷ 다음주에는 (5) 소공동체로 엮어진 공동체 ③이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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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해봅시다 :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마르 7,8) ▷ 편집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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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봅시다 : 기도는 어떻게 하나요? ▷ '함께 하는 여정'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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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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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죄짓지 않으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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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율법학자는 바리사이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엄격히 지켰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은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법은 어느 사회에서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본 바탕이 성립되니까요. 그러나 법이 인간 삶의 중심에 설 때, 끊임없이 문제가 생깁니다. 법은 기본이지 그것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법이 문제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겐네사렛 땅에까지 찾아왔습니다. 왜 왔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들의 눈에 또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제자 몇 사람이 보입니다. 손을 씻지 않아서 정결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손을 씻지 않은 것을 두고 불결하다고한 것이 아니라, 부정하다고 합니다.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은, 깨끗이 씻는 그 내용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주먹을 오그리고 물 속에서 흔들며 씻는 예절’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이처럼 ‘조상의 전통’이라는 법적인 형식을 문제 삼고 있는 그들을 예수님은 나무라고 있습니다.
법은 형식입니다. 형식은 겉으로 쉽게 드러나 보입니다. 그래서 지키는 사람과 형식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쉽게 알아 봅니다. 구별됩니다. 사실 그 당시의 일반 사람들은 그 규정들을 안다해도 다 지킬 수 없었습니다. 또한 이런 사소한 형식을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가리켜 “율법을 모르는 무리”라 하여, 모르는 그 자체가 곧 죄라고 하였습니다. “저주받을 족속”으로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부정한 것과 가까이 하면, 그 자신 또한 부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은 이기심을 부추깁니다. “나만 죄 짓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나만 선하게 살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형식을 지키는 일에 굳이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나 혼자서도 잘 지킬 수 있습니다. 자칫 부정한 사람과 가까이 하다가 나도 부정해 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예수님과는 상종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을 알게 또는 모르게, 율법을 범한 죄인으로 몰아넣고 자신만 고고한 그들과 예수님이 맞을 리가 없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계명을 꼭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그 계명은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나만 죄 안 지으면 된다는 형식적인 법이 아니라, 모두 함께 선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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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라우렌시오) 신부 / 서재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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