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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 2003년 주보
 
제 1314 호
연중제22주일 2003년 08월 31일 (나해)
 
 
이 주일의 말씀 : 나만 죄짓지 않으면 된다?     김영철(라우렌시오) 신부 / 서재성당
교구 가정대회 준비를 위한 묵상(4) : 부부사랑     김용민(안드레아) 신부 / 가정사목담당
생각해봅시다 - 본당 발전의 5단계 : (5) 소공동체로 엮어진 공동체 ②     다음주에는 (5) 소공동체로 엮어진 공동체 ③이 이어집니다
묵상해봅시다 :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마르 7,8)     편집부
알아봅시다 : 기도는 어떻게 하나요?     '함께 하는 여정' 중에서
 
 
이 주일의 말씀
나만 죄짓지 않으면 된다?

간단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율법학자는 바리사이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엄격히 지켰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은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법은 어느 사회에서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기본 바탕이 성립되니까요. 그러나 법이 인간 삶의 중심에 설 때, 끊임없이 문제가 생깁니다. 법은 기본이지 그것이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법이 문제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겐네사렛 땅에까지 찾아왔습니다. 왜 왔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들의 눈에 또 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부정한 손으로 음식을 먹는 제자 몇 사람이 보입니다. 손을 씻지 않아서 정결하지 못하다고 합니다. 손을 씻지 않은 것을 두고 불결하다고한 것이 아니라, 부정하다고 합니다.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라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손을 깨끗이 씻는 것은, 깨끗이 씻는 그 내용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지금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은 ‘주먹을 오그리고 물 속에서 흔들며 씻는 예절’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이처럼 ‘조상의 전통’이라는 법적인 형식을 문제 삼고 있는 그들을 예수님은 나무라고 있습니다. 
법은 형식입니다. 형식은 겉으로 쉽게 드러나 보입니다. 그래서 지키는 사람과 형식을 지키지 않는 사람을 쉽게 알아 봅니다. 구별됩니다. 사실 그 당시의 일반 사람들은 그 규정들을 안다해도 다 지킬 수 없었습니다. 또한 이런 사소한 형식을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이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을 가리켜 “율법을 모르는 무리”라 하여, 모르는 그 자체가 곧 죄라고 하였습니다. “저주받을 족속”으로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부정한 것과 가까이 하면, 그 자신 또한 부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법은 이기심을 부추깁니다. “나만 죄 짓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나만 선하게 살면 된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형식을 지키는 일에 굳이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나 혼자서도 잘 지킬 수 있습니다. 자칫 부정한 사람과 가까이 하다가 나도 부정해 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예수님과는 상종할 수 없는 내용입니다. 많은 사람을 알게 또는 모르게, 율법을 범한 죄인으로 몰아넣고 자신만 고고한 그들과 예수님이 맞을 리가 없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계명을 꼭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그 계명은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하느님의 계명은 나만 죄 안 지으면 된다는 형식적인 법이 아니라, 모두 함께 선하게 잘 사는 것입니다.


김영철(라우렌시오) 신부 / 서재성당

교구 가정대회 준비를 위한 묵상(4)
부부사랑

어느 할머니 할아버지 부부에게 퀴즈를 냈습니다. “결혼해서 오랫동안 한집에서 함께 사는 사람을 뭐라고 하지요?” “몰러.” “옆에 계신 할아버지를 뭐라고 부르지요?” “아~, 웬수.” “네(4)자 인데요?” “그럼 뭐, 평생 웬수지 뭐.” 할머니는 할아버지를 웬수라 부르면서도 밉지 않은 눈치였습니다. 이 모습을 보고 부부란 뭔지, 부부가 사랑한다는 것은 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결코 달콤한 맛으로만 이루어지지도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쓰디쓴 고난의 삶도 아닌 그 모든 것을 함께 녹아 있는 역사가 부부사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서로에게 자신을 끊임없이 바치는 것을 우리는 사랑이라 부르고 그런 사랑을 완전히 이루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성체성사는 그런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인 것은 그분이 내어주신 사랑이 믿는 이들을 그분과 하나 되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십시오(에페소 5,21-33)라는 상호순종의 정신은 부부사랑이 성체성사적인 바탕위에 있어야 함을 잘 가르쳐줍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일이, 서로 섬기는 일이 성체성사적인 것입니다. 결코 달콤함만도, 익모초같이 쓰기만 한 것도 아닌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함께 가는 평생의 여정이 부부 사랑입니다. 

김용민(안드레아) 신부 / 가정사목담당

생각해봅시다 - 본당 발전의 5단계
(5) 소공동체로 엮어진 공동체 ②

주일이면 이 공동체는 성찬의 전례에 함께 모인다. 그들은 복음 나누기와 그리스도의 영 안에 함께 모여 일을 함으로써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주일에 본당 신자들은 일치를 이루기 위해 모이는 것이다. 성찬의 전례를 통하여 신자들은 믿는 이들의 공동체, 그리스도의 지체로써 온전한 표지가 되는 것이다.
  교회의 전통적인 모습에서의 주일 미사는 종종 신자들이 성서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신앙의 자양분을 얻는 시간일 뿐이다. 주일에 교회에서의 한 시간은 다음 한 주일 동안을 신자로서 살아가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된다. 
  많은 소공동체로 구성된 본당에서는 신자들은 이미 그들이 생활화하고 체험된 그들의 신앙을 가지고 주일 성찬의 전례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과연 ‘소공동체란 무엇인가’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그리고 ‘소공동체란 어떤 모임인가?’라는 일반적인 물음이 제기된다.


다음주에는 (5) 소공동체로 엮어진 공동체 ③이 이어집니다

묵상해봅시다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마르 7,8)


하느님을 난 사랑합니다. 하느님을 난 사랑합니다. 나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시는 나의주, 하느님 찬양하네~’ 매주일 미사에 빠지지 않고, 성가도 열심히 부르며 묵주기도도 자주 한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입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며 되뇌어도 단지 입으로만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이 예수님께 제자들이 조상의 전통을 따르지 않는다고 따지자 에수님께서는 “너희는 하느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고집하고 있다’(마르 7,8)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생각들이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고 말씀하십니다.

  형식적으로 미사에 참례한다던지, 겉치레로 체면이나 차리는 행동들, 어렵지 않게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쉽게 내뱉는 말들이 실로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진정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우리의 지난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몸소 실천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편집부

알아봅시다
기도는 어떻게 하나요?
우리는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바랄 수도 있고(청원기도), 주신 은혜에 감사드릴 수도 있습니다(감사기도).
  올바르게 기도하려면 나에게 필요한 것을 일방적으로 청하는 자세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드리면 됩니다.

'함께 하는 여정'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