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그인  |  회원가입  

 
 
    - 2024년 주보
    - 2022년 - 2023년 주보
    - 2020년 - 2021년 주보
    - 2018년 - 2019년 주보
    - 2016년 - 2017년 주보
    - 2014년 - 2015년 주보
    - 2012년 - 2013년 주보
    - 2010년 - 2011년 주보
    - 2008년 - 2009년 주보
    - 2006년 - 2007년 주보
    - 2004년 - 2005년 주보
    - 2002년 - 2003년 주보
 
2002년 - 2003년 주보
 
제 1309 호
연중제18주일 2003년 08월 03일 (나해)
 
 
이 주일의 말씀 :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박병래(안토니오) 신부 / 중리성당
한 시인의 단상 : 들 꽃     이상열(바오로) / 시인, 포항 장성성당 신자
생각해봅시다 - 본당 발전 5단계 : (4) 단체 중심의 교회 ①     다음주에는 (4) 단체 중심의 교회 ②가 이어집니다
 
 
이 주일의 말씀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제1309호 / 2003. 8. 3. (나해) / 연중제18주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입고 먹고 사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삶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입고 먹고 사는 것’을 위해 수고를 하고 땀을 흘리고 때로는 눈물도 흘립니다. 심한 경우에는 ‘입고 먹고 사는 것’,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세상에 그것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저는 구미 3공단 근처에 삽니다. 일전에 ‘비니루 성당 좀 도와 주세요’라고 사랑의 실천을 호소한 그 중리 본당에 있습니다. 사랑어린 정성으로 이제 공사를 시작한 지도 한 달 정도 지났습니다만 비가 계속 와서 걱정입니다. 여러분의 사랑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그 고마움을 잊지 않고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이곳 신자들은 주로 공단과 관련되어 생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품 원가 절감을 위하여 공장이 동남아나 중국으로 떨어져 나간다’는 이야기, 또 ‘명예퇴직 된다’는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입고 먹고 사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문제, ‘입고 먹고 사는 것’으로 광야에서 모세에게 불평을 했습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그 불평을 들으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가파르나움에서 찾아온 사람들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썩어 없어질 음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요한 6,27) 그리고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들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요한 6,35-36)
예나 지금이나 ‘입고 먹고 사는 것’은 중요합니다. 광야를 지나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예수님 시대 사람에게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좀 다른 말씀을 하십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들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또 다른 곳에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또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말아라.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너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늘 너희야 얼마나 더 잘 입히시겠느냐?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마태 6,25-34 참조)
제가 성전 공사비로 주야 걱정하듯 ‘입고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야 있겠습니까마는 신실하신 예수님 말씀을 믿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최선의 길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나에게 오라’고, ‘나를 믿으라’고, 그리고 ‘영원히 살게 하며 없어지지 않을 양식을 얻도록 힘써라’고 하십니다. “나에게 오는 사람들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6,35) 아멘.


박병래(안토니오) 신부 / 중리성당

한 시인의 단상
들 꽃


작년 11 월 즈음 신부님께서 들풀을 심은 작은 화분을 주고 가셨습니다. 앵초과 앵초목에 속하는 들풀이라고만 알고 있어 어떤 꽃을 피울까 궁금했지요.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에 보니 밤사이 꽃대궁이 올라 왔는지 작은 꽃 두 송이가 피었습니다. 지름이 1cm 정도의 귀엽고 소박한 꽃으로 다섯 장의 맑은 붉은 색 꽃잎과 가운데 노오란 수술이 수줍게 모여 있었습니다. 꽃잎 안에는 보라색 가는 선이 세로로 서너 개씩 그어져 있고. 은근한 향(香)까지 사~하게 번집디다. 오래 들여다 보니 점점 신비로와 집니다. 이 볼품없는 줄기와 이파리들이 합심하여 축하하듯 크리스마스 이브에 꽃을 피워 우리들에게 선물하다니. 그 후 설날 사순절 때, 그리고 단오 날에도 피었습니다. 그저, 한 두 송이만 피었다가 이삼 일 만에 져버리는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꽃. 저는 이 풀꽃을 보며 우리 삶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나서 죽을 때까지를 한 평생, 혹은 삶이라 부르지요. 이 삶과 함께 운명이라 불리는 신비한 그 무엇이, 삶을 에워싸며 흐릅니다. 제 생각으로는 운명은 우리들에게 기회를 주거나 고통을 주는데 대체로 선(善) 쪽으로 더 기우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고통은 은총이니까.’ 늘 행복하면 무슨 재미로 사나요? 제가 가끔 이 말을 글로 쓰면, “그래도 늘 행복한 것이 낫잖아! 다 자기위안이야.” 라고 하시는 분이 계시는데, 그렇지 않지요. 삶이란, 전주 비빔밥 같아 사단칠정(四端七情)을 모두 넣어 비벼야 참 맛이 나지요.
  삶이 눈물겨운 것은 불행 때문이 아니지요. 진정 눈물겨운 것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누군가가 힘들거나 괴로울 때 ‘내’가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내 안에 사랑으로 함께 어우러질 때, 우리 모두 가슴 찡하게 코끝 매운…, 바로 그것. 눈물겨운 겨자처럼 삶에 맛을 더하는 것이 아니겠어요?


이상열(바오로) / 시인, 포항 장성성당 신자

생각해봅시다 - 본당 발전 5단계
(4) 단체 중심의 교회 ①
우리는 전 단계의 교회 모습에서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문제에 직면 한다든지, 또는 사목자들에 의해 다시 생각해야 하는 과정을 겪음으로써 교회에 관한 의문을 갖게 되는 과정을 보았다. 
  많은 신자들이 교회 활동에 더 많이 참여하는 본당이 되는 것이 목표인 셈이다. 이런 원의들은 단체들 안에서 실현된다. 예를 들면 전례분과는 주일 미사를 준비하고, 환자를 방문하는 단체는 병원에 있는 환자를 정기적으로 방문하며, 정신적인 갈등이 있는 사람은 그들에게 상담해줄 사람을 찾아간다. 또한 물질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과 관련을 맺고 있는 단체도 있으며, 또 어떤 그룹은 경제적으로 모여서 성서 공부를 한다. 또 나아가 이미 복음 나누기를 위해 모이는 단체도 있다. 전체 공동체의 문제들이 다루어진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지역 내 실업 문제에 관계하고 또 다른 그리스도인은 사회 정의 문제에 관계한다. 또 개신교와의 관계를 종교 일치 운동 차원에서 접근하기도 한다. 
  많은 본당은 모든 신자들이 요구 사항들을 충족시키는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써 지리적으로 구역과 반으로 나누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이것을 소공동체 생활과 혼동해서는 안되겠다) 구역은 동네나 동네의 일부로 구분한다. 구역장은 지명되거나 선출된다. 구역장은 정기 모임(구역, 반모임)에서 소외받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가 병으로 고생하며 궁핍하게 사는지 알아본다. 반에서 가난한 이들을 방문토록 주선하고 어린이들에게 교리 공부를 시키며 필요하다면 교회를 위하여 교무금을 걷는다.


다음주에는 (4) 단체 중심의 교회 ②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