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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 2003년 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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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48 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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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의 말씀 : "저를 보내 주십시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 이형문(안토니오) 신부 / 중방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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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순교자 : 김화춘 야고보 (? ~ 1816) ▷ 시복시성추진위원회 홍보분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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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들의 세상보기 : 히딩크의 성공 비결 ▷ 박영봉(안드레아) 신부 / 대구가톨릭대학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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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 예수님이 여기 있어요!(마르 14, 43-52) ▷ 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 프랑스 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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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교리 : 죽은 이들의 부활 (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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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의 말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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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보내 주십시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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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로 살아가면서 요즘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직업이나 학문 등이 점점 세분화․전문화 되어 가고, 사람들의 사고방식이나 문화의 변화 속도도 빨라 져 도무지 따라 잡을 수 없고, 어디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지, 왜 문제가 되는 것인지 완전히 알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 안에서도 다양한 전문가가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사제도 예외가 아니어서 다양한 전문가를 필요로 하고 있고 또한 현실적으로도 요구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문가 평신도를 잘 활용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실 그들이 교회 안에서 주어지는 다양한 일들을 해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현대의 발달된 다양한 것들을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면, 또한 각 분야에서 복음을 전하고 사목을 하고자 한다면, 그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사제가 더더욱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는 군중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드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ꡒ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ꡓ하고 분부하십니다.
급변하는 시대, 자신이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지,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른 채 자기 눈앞만 바라 보고 바쁘게 달려가고 있지는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세월이 지나서야 '그게 잘못된 것이었구나'하고 판단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예를 들어, 인간 복제 문제가 연일 메스컴에서 중요 관심거리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어떤 문제점이 있고 앞으로 또 어떤 문제점이 대두될 것인지 이 분야의 전문가뿐만 아니라 관련된 다른 분야에서도 많은 연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양한 전문분야에서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어야 할 의무가 우리 교회에 있지 않을까요? 교회의 전문 분야가 아니라고 뒷짐만 지고 있어야 할까요?
따라갈 수없이 빠른 변화로 점점 다양하고 전문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 각 분야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현할 수 있는 하느님의 일꾼이 필요합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이 시달리며 허덕이면서 헤매이지 않도록 목자를 보내 달라고 청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양한 분야에 '가서 하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고, 각 분야에서 앓는 사람을 고쳐 주고 죽은 사람은 살려 주고 환자들을 깨끗이 낫게 해 주고 마귀를 쫓아내는' 주님의 일꾼들을 청합시다.
어느 예언자가 말했던가요?
"저를 보내 주십시오. 제가 있지 않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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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문(안토니오) 신부 / 중방성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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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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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여기 있어요!(마르 14, 43-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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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 인간이지요. 천주교 신부가 된다고 인간이 아닌 건 아니지요. 제 삶의 부조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ꡐ나도 인간이다ꡑ라고 외치는 건 절대 아니구요. 다만, 인간인 나 자신에 대한 깊은 반성을 하고파 가끔씩 ꡐ너도 인간이냐?ꡑ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곤 하지요.
하느님의 모습이 온누리에 두루 퍼져나가게 하는 데 있어 자그마한 힘이라도 보태려 사제의 직분을 받았지만, 제 모습에 가려져 있는 하느님의 슬픈 얼굴은 제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아가는지, 도대체 인간다운 구석이, 사제다운 구석이 있는지…. 늘상 돌이켜 보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이 잡혀가셨습니다. 제자 중 하나였던 유다가 살며시 다가와 예수님을 포옹합니다. 잡아가야 할 사람이 바로 이 예수임을 알리려 스스로 길잡이 노릇을 하고 나선 유다, 제 자신이 걸어야 하는 그 길의 긴장감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저기 예수가 있다, 저기 너희들이 믿는 진정한 신이 서 계신다…." 이렇게 외쳐야 하는 게 제 삶의 구체적 실천이겠지만, 뒷편 어둑한 곳에서 나에게 떨어지는 이익이 도대체 무엇인지 따져보는 서글픈 모습 또한 제 삶의 한 부분임을 부끄러이 껴안아 봅니다.
제가 행하는 모든 행위들이 예수를 고발하는 행위가 될 수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참신한 '신부님'으로 늘 예수님을 알리고파 하지만, 자칫 나를 챙기고, 그 뒤에 예수님을 챙길 수 있는 속물근성을 되짚어 봅니다. 저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팔아먹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제 모습 어느 한 부분으로 인하여 예수님이 잡혀가신다면 전 어떡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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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 프랑스 유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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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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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들의 부활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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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증인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다음에 그분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사도 10,41 참조). 그리고 그 이후 모든 세대의 신앙체험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말씀 안에서, 성사 안에서, 성인들 안에서, 가난한 이들 안에서 우리 곁에 계시며, 그리고 신앙을 통하여 우리 마음 안에 살고 계신다(에페 3,17 참조)는 것이다.
두 번째 근거는 창조에 대한 믿음이다. "주님은 세상 모든 것을 사랑하시며, 주님이 만드신 그 어느 것도 싫어하시지 않는다. 주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만드셨을 리가 없다"(지혜 11,24).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을 지탱하시고 이끌어 가신다. 물질적인 삼라만상은 사라지게 되고, 또한 삼라만상의 일부인 우리 육체도 사라진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약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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